티스토리 뷰
옛날에 왕이 성당 공사 현장에서 석공 노동자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 명은 돌을 깎고 있다고 하고, 한 명은 성당을 짓고 있다고 하였다. 두 번째 같은 생각을 가진 석공이 있었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는 훌륭한 건축 문화를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 우리도 그런 문화가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건축 자재로 건축물을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건축이 다시 우리의 삶과 정신과 문화를 만든다. (137쪽)
자동차는 우리로 하여금 멀리 있는 공원에는 갈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가까이 있던 마당과 거실 같던 골목길을 빼앗아 갔다. (…)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는 마당 대신 넓은 주차장을 얻었다. 하지만 마당이 없어지니 발코니까지 확장해서 집을 더 넓히려고 안달이었다. 마당과 골목길의 부재는 고스란히 더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구하는 갈급함이 된 것이다.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 100평짜리 주상복합보다 더 넓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차 타고 한 시간 가야 하는 1만 평자리 공원보다 한 걸음 앞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나 열 걸음 걸어서 있는 운치 있는 골목길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강북 달동네로, 유럽의 골목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193쪽)
과거에 식량은 곧 생존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돈이 그 역할을 한다. 과거에 식량 저장의 한 방편으로 돼지를 키웠다면 현대에는 돈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산다. 부동산도 돼지나 발효식품처럼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가 기근을 넘기는 방식이 되듯이 현대인들에게 돈이 부족한 시기를 넘기는 방식은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에서 아파트는 환금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돼지의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중산층 국민들은 퇴 후 아파트를 처분해서 돈의 기근 시기를 넘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서 돼지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돼지와 아파트는 다르지만 같은 기능을 하는 사촌 지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감안하면 수많은 아파트 돼지들이 도살을 기다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235쪽)
미래 우리의 후손은 지금 우리가 100년 전 원목으로 만든 한옥을 경외의 눈으로 쳐다보듯이 지금의 콘크리트 건축을 흠모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철거해야 마땅한 환멸의 대상이 아니라 약간은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보존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30년이 넘은 아파트 단지에 가 보면 나무들이 건물을 가릴 만큼 자라서 그렇게 흉측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연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좋은 예처럼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 아파트를 짓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흉측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때때로 시간은 사춘기의 가슴 아픈 실연의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건축물 역시 그렇다. (237쪽)
우리나라 LG도 프라다폰으로 일찍이 터치폰을 개발했지만, 애플은 스크린을 손가락 끝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면서 조작할 수 있는 폰을 만든 것이다. 애플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애완동물처럼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선보인 것이다.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혁신은 본능적 욕구에 충실할 때 만들어진다. (262쪽)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276쪽)
나는 도시에 산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태어났고, 비록 초등학교 때 서울을 벗어나 이사를 해야했지만, 여전히 수도권 도시에 산다. 나와 같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한 남자와 도시에서 결혼했고, 도시에서 자녀를 낳았다. 내 자녀도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도시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고, 나와 남편도 이 도시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 도시 중심에 모여 산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물론 나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유현준 교수의 책이다. 지리과라는 교과 특성과 건축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내 은사님이 빌려주신 책이기도 하다. (앞서 '어디서 살 것인가'도 은사님에게 빌려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도시도 건축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숨을 어떻게 불어넣느냐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알게 되었다. 특히 아파트를 분양 받아 열심히 은행에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 아파트에 대해 서술해 놓은 부분들이 관심있게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물론 비판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30대 젊은 엄마다..) 학교 건축과 교도소 건축의 닮은 점을 서술한 점도 인상깊었다. 스머프 마을과도 같은 저자의 건축 제안은 너무나 참신했고,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했다. 무산되었다니 아쉽지만, 그게 현실인 것도 사실인 것 같아 씁쓸했다.
건축 분야에 대한 개론서, 이론서가 아니다. 실제 우리 도시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여러 궁금증들을 재미있게 서술해놓아 읽으면 읽을수록 도리어 호기심이 더 생기면서 재밌게 읽게 되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어디서 살 것인가' 책 2권 모두 나의 학생들에게도 많이 추천해주었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0) | 2018.12.24 |
|---|---|
| 김제동,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0) | 2018.10.31 |
|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0) | 2018.10.24 |
|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0) | 2018.10.17 |
|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0) | 2018.08.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