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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을 공부하고 사회교육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 저자.
착한 척한다고 비난하면 달게 받겠다고,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는(103쪽)
단호한 다짐 안에 느껴지는 선의가 귀하고 따뜻하게 느껴져
나 또한 그러리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책이다.
인생에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에 선물 받은 책이었기에
글쓴이가 말하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작은 이야기들에
자꾸만 진심이 되어 공감하느라 페이지를 천천히 곱씹어 넘겼다.
찰나의 선의라도 그 자체의 가치를 알며,
분노의 힘은 어디서 나와야 하는지 아는 정의로움과
‘나일 수 없는 너’와 ‘너일 수 없는 나’가
서로에게 ‘듣는 귀’라도 되어주자는 저자의 시선이 참말 좋았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닿아선 편집자 이환희 선생님에게 띄우는 이야기에
아, 하는 탄성이..

밤늦게 불쑥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 학생에게 “고마워”라고 답했다. 어쩌면 나는 너한테 필요한 조언을 다 못 해줄 테지만, 그런 내게 네 이야기를 들려주어 참말로 고맙다고. 나는 네게 좋은 상담자가 되어주지 못한 걸 미안해하지 않을 테니 너 또한 내게 한밤에 찾아온 걸 미안해하지 않기로 하자고. 네가 말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후련해진 만큼 나 역시 ‘듣는 귀’가 되어주어 기쁘다고. (…) 저마다의 돌덩이를 짊어진 채 사회적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이 때때로 그 테두리를 뜯어내고 서로에게 ‘듣는 귀’가 되어주고, 거기에 미안해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가길 꿈꾼다. (34쪽)
고통스럽던 순간들, 스스로의 강박적인 생존 본능을 미워했던 그 시간들조차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데 밀알만 한 크기의 쓰임새를 갖는 셈이다. 이 또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엇이면 좋겠다. (39쪽)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92쪽)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감정은 내게 생경한 것이었다. 그게 몇 안 되는 나의 덕목이라 생각해왔는데, 얼마 전 이런 문구를 보았다. ‘이 정도면 딱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그대가 보수화되는 시작점이라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이 정도면 딱 좋다며 스스로의 소박함에 은근히 자부심을 가졌던 그 조건들은 지금 이 땅에서 누구나 소박하게 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 가진 자들이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에 분개하지 않는 나는,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그건 ‘만족한 자’의 윤리적 책무가 아닐까. 이를 저버리는 순간 나는 물욕 없음을 내세우며 안빈낙도 운운하는 배부른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99쪽)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인 골을 뛰어넘어 더 다가가지는 않은 채 각자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써 상대의 아픔을 더듬어보려는. 그것이 ‘너일 수 없는 나’와 ‘나일 수 없는 너’가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선물 아닐까. (117쪽)
우리가 세상 안에서 서로 관계 맺으며 ‘지금 저 모습으로 저 사람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한다. 그런 사소한 게 무슨 소망이냐 할 테지만, 일생 동안 품을 바람 중 하나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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