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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사진관집 이층'

eunjini 2018. 6. 26. 09:32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 신경림,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32쪽)

 

 

 

 

  초등학교 오학년 때 별을 좋아하는 여선생이 담임이었다. 하루에 한두번은 꼭 꿈을 꾸는 눈으로 별 얘기를 했다. 카시오페이아, 페르세우스, 그리고 작은곰자리, 큰곰자리. 노래하는 것 같은 감미로운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별나라에 사는 나 같은 어린이는 무슨 놀이를 하며 놀까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 별나라들을 두루 돌고 싶다, 네 숨결을 타고.

  열살로 돌아가 네 부드러운 등에 업혀서.

 

- 신경림, '네 머리칼을 통해서, 네 숨결을 타고' 중에서 (42쪽)

 

 

 

 

사진관집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한밤에도 덜커덩덜커덩 기차가 지나가는 사진관에서

낙타와 고래를 동무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무 때나 나와 기차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갈 수 있는,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을 그 먼 곳에 갈 수 있는,

어렸을 때 나는 역전 그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꿈이 이루어져 비행기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다녀봤지만, 나는 지금 다시

그 삐걱대는 다락방에 가 머물고 싶다.

아주 먼 데서 찾아왔을 그 사람과 함께 누워서

덜컹대는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 소리를 듣고 싶다.

낙타와 고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

 

다락방을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싶다.

그 사람이 날 찾아온 길을 되짚어가면서

어두운 그늘에도 젖고 눈부신 햇살도 쬐고 싶다.

 

그 사람의 지난 세월 속에 들어가

젖은 머리칼에 어른대는 달빛을 보고 싶다.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날을

다시 그 삐걱대는 사진관집 이층에 가 머물고 싶다.

 

- 신경림, '역전 사진관집 이층'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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