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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eunjini 2017. 6. 21. 16:15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던 무렵이 되어서야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문재인의 운명' 이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소용돌이를 훗날 아이들의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기록할까.  

그리고 내 아이가 지금의 시대를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이 책을 읽으며 아프게 다가왔다.

 

'복수전공과 조기졸업을 동시에 해내느라, 임용 시험을 통과하느라, 교직에 들어와 적응하고 하루하루 해내느라...' 

당장 내 앞에 산적해있는 당면 과제들에만 정신이 팔려 살아왔다는 현실적이고도 어리석은 핑계로

그동안 정치와 사회 현실에 무관심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두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과 문재인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이

내게 복잡다단했던 현대사를 총망라하여 찬찬히 읽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이 그의 생을 통해 줄곧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만은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 밑줄긋기

 

 

인권변호사라는 소리를 듣다보면 시국사건과는 무관한, 그냥 딱한 사람들의 사건들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집단 민원성 사건도 맡게 된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았다. 늘 일보따리를 집에 가져가서 새벽까지 재판준비를 하거나 변론서면을 쓰곤 했다. 아이들은 변호사를 3D업종처럼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일을 맡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늘 행복했다.

일이 많아 힘들었지만 내 삶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나의 개인적인 삶과 세상을 향한 나의 의무감이 나름대로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는 느낌으로 지낼 수 있었던 시기였다. (75쪽, '만남')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만 고통스러운 건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무리해서 대학까지 보내주신 건데, 내가 그 기대를 저버렸다는 괴로움이었다. 어머니가 호송차 뒤를 따라 달려오던 장면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가끔씩 면회 오는 어머니를 뵙는데, 영 미안하고 괴로웠다.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하필 네가 왜 그 일을 해야 했느냐?"라고 묻는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예 면회를 오지 않으셨다. (140쪽, '인생')

 

그래도 나는 군대경험이 제대 후 내 삶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입대 후 많은 일은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다 해낼 수 있더라는 경험. 그것이 나를 훨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변호사를 할 때나 청와대에 있을 때 처음 겪는 일이 많았다. 내 개인적으로 처음일 뿐 아니라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을 때도 많았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부딪쳐 가야 했는데, 그럴 때 그런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됐다. (166쪽, '인생')

 

참여정부가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끝까지 도덕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동력이다. 또 대통령 스스로가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해야 할 개혁과제를 마지막 순간까지 다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344쪽, '동행')

 

"힘이 모자라거나 시운(時運)이 안 되면 패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더라도 우리의 가치를 부둥켜안고 있어야 다음의 희망이 있는 법이다. 당장 불리해 보인다고 우리의 가치까지 내버린다면 패배는 말할 것도 없고, 희망까지 잃게 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당시 우리 진영이 열린우리당을 깨고 나간 일을 대통령은 그렇게 봤다. 대통령은 "계산하지 않는 우직한 정치가, 길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길"이라고 늘 강조했다. (366쪽, '동행')

 

대통령은 어쩌다 그런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나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했다. 가난이 그를 공부에 매달리게 했고, 가난이 그를 인권변호사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가난하지 않았따면, 자신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인권변호사였고, 민주화운동이었다. 정치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그를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자신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에 변호사 하면서 가난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다른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을 돕는 삶으로 빠져들면서 자신은 도로 가난해졌다. 봉하마을은 외진 곳이어서 땅값이 엄청 싼데도 사저 건축비용이 없어 은행 대출을 받았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도 빌리게 됐다. 대통령은 나에게 "내 자신만 정치적으로 단련되었지, 가족들을 정치적으로 단련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은 대통령에게 퇴임 이후의 대책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노 대통령 서거 후 상속신고를 하면서 보니 부채가 재산보다 4억 원 가량 더 많았다. (407쪽, '동행')

 

유서를 처음 본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 나를 못 견디게 했던 건, 이분이 '유서를 언제부터 머리에 담고 계셨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다듬을 수 있는 글이 아니므로, 대통령은 아무도 몰래 머리속에서 유서를 다듬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첫 문장은, 나머지 글을 모두 컴퓨터에 입력한 후 추가로 집어넣었다. 그답게 마지막 순간에도, 입력한 유서를 읽어보고 다시 손을 본 것이다. 대통령이 마지막 얼마동안 머리속에 유서를 담고 사셨으리라는 생각이 지금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412쪽, '운명')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41쪽, '운명')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있는 힘을 다했다. 능력이 모자라거나 생각이 미치지 못한 점이 있었을지언정, 늘 열심이었고 사심이 없었다.

내 개인으로도 마찬가지다. 애당초 나는 국정에 관해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고, 민정수석실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열심히 하고 사심 없이 일하는 것으로 주어진 상황을 감당하고자 했다.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 자세가 모두 그럴 것이다. (446쪽, '운명')

 

어릴 적 가난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그대로 인생의 교훈이 됐다. 더 이상 가난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받았던 도움처럼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자라서 학생 운동을 하게 된 것고, 인권변호사가 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466쪽,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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