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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오직 두 사람'

eunjini 2017. 6. 22. 12:02

 

 

 

흡입력 있는 내용 전개, 무엇보다도 그대로 쓰윽ㅡ 막힘없이 자연스레 읽어나가게 되는 그의 문체를 좋아한다.

김영하의 7년만의 신작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었다.

여러 단편 중에서 '오직 두 사람'과 '아이를 찾습니다' 두 편이 가장 인상깊었다.

 

 

 

'오직 두 사람'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미친놈도 언젠가 또다른 미친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저 낯선 몸뚱어리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허망한 존재에게 인생이 바쳐졌구나 싶어요. 저는 저 사람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바이털 사인이 꺼지고 더이상 저 육체로부터 아무 반응도 받아오지 못한다면, 즉 아빠가 마침내 의학적으로 사망한다면 한동안은 좀 막막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하게 돼요. 뉴욕에 있었다던 그 두 사람,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에 대해서요. (39쪽, '오직 두 사람')

 

마치 연애소설의 제목 같지만, 아니면서도 맞고, 맞으면서도 아니다. 아버지와 딸의 특별한, 아니 유별난 관계맺음이 서사의 주된 핵심이다. 실제인지 상상인지 몰라도 어쨌든 고향에서조차도 잊힌 어떤 언어를 뉴욕이란 곳에서 오직 두 사람만 그 언어의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기사. 로 소설은 시작되는데 아마 아버지와 딸 사이에는 그들만이 통하는, 남들에겐 이해될 수 없는 어떤 언어가 있었음을 시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에게 용납될 수 없는, 한 아버지에게서 유일하게 선택(?) 받은 딸.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기도, 좋아하기도 했지만 불편하기도, 부담스럽기도 그러다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던 딸. '소설 읽기'는 독자에게 여러 삶의 방식을 간접 경험하게 하고, 인물의 대응방식과 심리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퍽 괜찮은 소설 같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되려 방정식의 x처럼 다시 그가 자신을 가두는 것 같았다는 딸의 고백이 가장 인상깊었다.

 

 

 

'아이를 찾습니다' /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십 년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65쪽, '아이를 찾습니다')

 

자식을 너무나 허망하게 잃은 부모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분명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읽으면서 가슴이 자꾸 콩닥콩닥 무언가에 쫄리듯이 아파와서.. 자꾸만 책을 덮었다가 그러면서도 뒷 얘기가 궁금해 펼쳐 읽다가 또 덮기를 반복했다. 소설 속 아이처럼 지금 딱 세살배기 아기를 '현재형'으로 키우고 있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정말 심리적으로 힘든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그가 미친 아내를 떠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윤석이 정신 나간 아내에게 기대고 있었다.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매일 전단지를 돌린 것처럼. 남들이 보기엔 아무 희망도 없는 부부관계에서 그는 삶을 지탱할 최소한의 에너지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에게 미라는 카라반의 낙타와도 같은 존재였다. 목표와 희망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못해도 돼. 웃지 않아도 좋아.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이 사막을 건널 때까지.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끔찍한 모래지옥을 함께 지나가겠는가. (71쪽, '아이를 찾습니다')

 

남보기엔 미친 여자이지만, 그렇게라도 자신의 옆에서 이 불행 속을 함께 걸어가달라고 말하는 '윤석'의 이런 고백이 참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들에게 불행을 초래한 '그 여자'는 죗값을 스스로 치러버리고 말았고, 불행 속에서도 애타게 원하고 찾았던 '성민'은 완전한 '남'이 되어 되려 유괴당한 아이인 것마냥 살다가 '윤석'에게서 '미라'를 잃게 하고, 다시 또 처음처럼 말없이 떠나버리고는 '보람'을 통해 '갓난아기'만을 다시 남겨줬다. 모든 일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인데, '불행'이라는 것에도 그 끝이 있긴 한 걸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림으로써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아이를 되찾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지옥은 그 아이를 되찾는 순간부터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문학에 어떤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언어의 그물로 엮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문학은 혼란으로 가득한 불가역적인 우리 인생에 어떤 반환의 좌표 같은 것을 제공해줍니다. 문학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독자 앞에 불려오고, 지금 쓰인 어떤 글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예감합니다. (269쪽, '작가의 말')

 

40페이지 정도 되는 단편으로 간결하게 담긴 이야기이지만, 마치 어느 장편 소설의 압축본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주된 스토리와 각 인물들의 캐릭터 그리고 얽혀 있는 갈등 관계가 탄탄하게 느껴졌다.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고 툭, 마무리 되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보니까 김영하 작가가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각색했다던데, 이 소설도 영화화된다면 분명 가슴을 세게 치고야 말 내용이지만 나는 꼭 영화관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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