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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각주를 많이 달고,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객관적 서술과 인용 문구 등이 많이 쓰인 것.
치밀하고 촘촘한 사건전개가 아니라, 단편단편의 일들을 요약적으로 서술해 놓은 부분들.
분명 장편소설이라고 앞에 명시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너무 소설답지 않은 문체 때문에 조금 어색했다.
김지영 씨의 정신과 상담을 맡은 이의 기록이라고 마지막에 전체적인 플롯이 드러나긴 했지만,
그보다는 방송 작가로 10년 동안 활동했다는 작가의 이력을 보니, 그제야 이 소설의 형식이 왠지 이해가 갔다.
소설보다는 좀 긴 '칼럼' 같다는, 또는 '휴먼 다큐'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되겠단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남편에게 "오빠, 82년생이잖아. 친구 중에 김지영이라는 이름 있었어?" 하고 물어봤다.
"글쎄, 김지영? 되게 흔한 이름이잖아. 아마 있었겠지?" 라고 남편은 말했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와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2000년대 초반에 결혼+임신+출산 3종세트를 겪는
보편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에 '김지영'이란 이름이 적절한 이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작가는 이 소설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흥미진진한 사건전개를 끌어나가기 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김지영'들에게 보편적인 정감, 공감을 얻고자 더 노력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일찍 끝나지, 방학 있지, 휴직하기 쉽지.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그만한 직장 없다." (71쪽)
"엄마 말대로 좋은 직업이더라고. 일찍 퇴근하지, 방학 있지, 안정적이지. 무엇보다 마늘쫑처럼 싱그러운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뭔가를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멋져. 물론 소리 지를 때가 더 많겠지만." (74쪽)
소설에서 위와 같이 표현된 "그만한 직장"에 다니고 있기에, 그리고 가사와 육아에 매우 적극적인 남편 덕분에
정신과 상담에까지 이를 만큼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나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인생, 비슷한 경험, 비슷한 과정들을 겪어 왔기에
소설 속 '김지영'과 '나'의 닮은 점이나 하소연 같은 일들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발 '맘충'이란 단어는 세상에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밑줄 긋기
몇 번의 시도 끝에 얼핏 육각형 모양이 살아 있는 커다란 눈송이가 남자 친구의 검지 끝에 살며시 앉았고, 김지영 씨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너 회사 잘 다니게 해 달라고.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사회생활 잘하고, 무사히 월급 받아서 나 맛있는 거 많이 사 달라고."
김지영 씨는 가슴속에 눈송이들이 성기게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충만한데 헛헛하고 포근한데 서늘하다. 남자 친구의 말처럼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어머니의 말처럼 막 나대면서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109쪽)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119쪽)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145쪽)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165쪽)
아내는 수학 영재였다. (중략) 그런 사람이 왜 초등 수학 문제집을 그렇게 풀어 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를 묻자 아내는 재밌어서, 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당신 수준에 그게 뭐가 재밌니? 유치하기만 하지."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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