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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찬성과 에반
에반을 안락사 하는 데 필요한 돈 10만원. 그보다 조금 더 큰 액수를 벌었지만, 스마트폰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 때문에 돈을 자꾸만 쓰게 되고, 그와중에 동물병원은 ‘상중’이라 문을 닫고 있고. 되려 그럴수록 왠지 에반을 더 옆에 둘 수 있을 것 같아 안심하게 되는 ‘찬성’의 아이러니. 읽으면서 왠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소설이 떠올랐다. (설렁탕이 꼭 먹고 싶다던 아픈 아내를 매몰차게 혼자 두고 일을 나선 인력거꾼, ‘김첨지’. 그날따라 운수가 좋아 손님이 줄을 잇고, 돈도 짭짤하게 벌었다. 하지만 정말 아내가 죽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집으로 향할수록 걸음이 무거운 김첨지. 결국 번 돈으로 술을 사먹고 설렁탕을 사들고 늦게서야 귀가한 뒤 아내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끝맺는 소설이다.)
곳곳에 ‘불길함’이 산적해 있는 소설이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그렇고, 자꾸만 용서를 구하는 건강이 좋지 못한 할머니. 동물병원은 하필 ‘상중’이었고, 로드킬이 잦은 휴게소 앞길에 대한 설명. 자루에서 떨어지는 에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색 피. ‘노찬성’이라는 이름까지.
‘용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용서는 ‘누가’ 하나. ‘어떻게’ 받나. 받기는 할 수 있나. 받으면 뭐가 달라지나.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 밑줄 긋기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45쪽)
‘네가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을 본 시간이 길어…… 알고 있니?’ (62쪽)
단편 하나씩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문장을 곱씹어가며 읽었다.
상실을 경험하거나 경험중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달아 나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지금 이 시대야말로 '상실의 시대'인 것일까.
요즘 읽는 소설마다 화두가 '상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읽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 밑줄 긋기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124쪽, '침묵의 미래')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173쪽, ‘풍경의 쓸모’)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 (182쪽, ‘풍경의 쓸모’)
해마다 아이 생일 초를 밝힐 때면 기쁘고 엄숙한 마음이 든다. 긴 하루가 모인 한 해, 한 해가 쌓인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귀한 건지 알아서. (215쪽, ‘가리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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