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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을 읽었다.

이 책은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작품"이라 평가 받는다고 한다.

 

삶에서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그 중 마지막 다섯 번째 시도에 의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작가.

그 작가의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이었다. (아니, 소설이라기 보단 여기서 표현한 대로 '수기'라고 해야 할 것도 같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 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138쪽, '후기')

 

소설의 말미에 교바시 스탠드바의 마담은 '요조'에 대해서 이렇게 회상했다.

 

천성적으로 섬세하고 아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요조'에게 있어서 '삶'이란 너무나 거대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 그래서 그 자체로 휩쓸리거나 때론 익살스럽게 넘기거나 차라리 파멸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밖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92쪽, '세 번째 수기')

 

철저한 자기부정을 바탕으로 한 '요조'의 인간관계는 '신뢰'라는 것은 존재할 수도 없고,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유명한 명제가 맞구나, 라고 느껴졌다.

 

그리하여 그 다음 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똑같은 관례를 따르면 된다.

즉 거칠고 큰 기쁨을 피하기만 한다면,

자연히 큰 슬픔 또한 찾아오지 않는다.

앞길을 막는 방해꾼 돌을

두꺼비는 돌아서 지나간다.

 

우에다 빈 번역의 기 샤를 크로인가 하는 사람의 이런 시구를 발견했을 때 저는 혼자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처럼 뻘게졌습니다.

두꺼비.

그게 나야. 세상이 용납할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도 없지. 매장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 나는 개보다도 고양이보다도 열등한 동물인 거야. 두꺼비. 느릿느릿 꾸물거리기만 하는 두꺼비. (95쪽, '세 번째 수기')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에 동감할 수는 없는 '나'이지만, 누구에게나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단순히 선악의 잣대만을 들이댈 수 없는 자기만의 이유는 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삶에 대한 그의 너무나 유약한 대응방식과 자기비판과 부정이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머리에 떠올랐던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우 넋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요조'에게도 그만의 '갈매나무'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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