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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긴 호흡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1,2권 합치면 1,000쪽은 넘을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열렸던 고리가
마침내 닫히면서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며 소설이 끝났다. (끝나버렸다.)

1권의 흡입력은 엄청났다.
묘하게, 설득​력 있게 빠져들었다.

2권 중반은 원치 않았던 장르로 흘러가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대략적인 느낌은 나도 공감하고 느꼈지만
역시 나같은 사람(?)에게는 설명이 좀 부족했다.

평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클래식이나 오페라, 재규어 등 외국 자동차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왔는데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로웠다. 굳이 필요없는 서술일 수도 있겠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데 있어 풍부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느껴진다.

여하튼, 재밌게, 잘 읽었다. 

 



# 밑줄긋기

나는 이제 서른여섯 살이었다. 슬슬 마흔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 마흔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화가로서 고유한 작품세계를 확보해야 한다. 나는 줄곧 그렇게 느꼈다. 사람에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하나의 분수령이다. 그 고개를 넘어가면 더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 그때까지 아직 사 년이 남았다. 하지만 사 년 정도는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더욱이 나는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느라 인생에서 이미 상당한 거리를 에돌아버렸다. 어떻게든 다시 한번,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1권, 84쪽)

 

우리 사이에는 확연한 생명의 교류가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내어주는 동시에 무언가를 얻었다. 그것은 제한된 시간, 제한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교류였다. 이윽고 엷어져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기억은 남는다. 기억은 시간에 온기를 줄 수 있다. 그리고 ㅡ 잘되면 말이지만 ㅡ 예술은 그 기억을 형태로 바꾸어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반 고흐가 시골의 이름 없는 우편배달부를 집합적인 기억으로 오늘날까지 살아 있게 한 것처럼. (1권, 122쪽)

 

잔을 두 개 챙기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냈다. 위스키를 잔에 따르니 무척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가까운 사람이 마음을 여는 듯한 소리다. (1권, 187쪽)

 

숲의 정적 속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온다. 한 생각이 가고 다른 생각이 온다. 한 형상이 가고 다른 형상이 온다. 나 자신조차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씩 무너졌다가 재생된다. 무엇 하나 같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상실된다. 시간은 내 등뒤에서 조금씩 죽은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사라진다. 나는 그 구덩이 앞에 앉아 시간이 죽어가는 소리에 마냥 귀를 기울였다. (1권, 369쪽)

 

"오늘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네요." 마리에가 말했다.

"그런 날도 있어." 내가 말했다. "시간이 빼앗아가는 게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가져다주는 것도 있어. 중요한 건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일이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눈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대고 안쪽을 살펴보는 사람처럼.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2권, 24쪽)

 

그러나 내가 지금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는 그녀에게 하지 않기로 했다. 열세 살의 아름다운 소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그녀의 질투심을 미묘하게 자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나이가 몇이든 모든 여자에게 모든 나이는 곧 미묘한 나이다. 마흔 살이든 열세 살이든 그녀들은 언제나 미묘한 나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소소한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2권, 82쪽)

 

그러나 완전히 올바른 일이나 완전히 올바르지 않은 일이 과연 이 세계에 존재할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비가 내릴 확률이 30퍼센트일 때도 있고 70퍼센트일 때도 있다. 아마 진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30퍼센트 진실일 때도 있고, 70퍼센트 진실일 때도 있다. 그렇게 보면 까마귀는 편하다. 까마귀에게 비는 내리거나 내리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퍼센티지 같은 것은 그들 머릿속을 스치지 않는다. (2권, 475쪽)

 

"완성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모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야." (2권, 5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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