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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레카토'라는 소설을 우연히 읽으며 80년 광주에서의 일을 머릿속으로, 마음으로 아프게 떠올렸다.

그리고 올해 광복절 전날, 마침 재량휴업일이어서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왔다.

 

정말 오랜만에,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남편이랑 영화관에서 본 영화이다.

영화가 정말 좋았다. 송강호의 연기가 좋았고, 내용이 너무 아팠고, 마지막 인터뷰 영상을 통해서야 택시운전사와 외신기자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감동에 가슴벅찼다.

 

어린 딸을 걱정하며 차를 돌렸다가 다시 또 유턴을 하는 인물의 마음이 얼마나 큰 결심이고, 아픈 선택이었을지 우리도 세살배기 아이를 키우기에 절실히 공감이 되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 그리고 어린 딸에 대해 한국말로 중얼거리듯 토로했지만, 외국인 기자는 그의 억양과 어조 등 비언어적 메시지를 통해 이미 다 알아들은 듯 그처럼 조용히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모습이 제일 슬펐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주체적인 자각 없이 움직이는 군인들이 대다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트렁크 속 번호판을 보고도 그냥 보내주던 군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상황, 그 순간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과연 나라면 그처럼 유턴해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그 군인처럼 택시를 그냥 보내줄 수 있었을까? 자문하게 되었다.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마지막에 이름과 번호를 가짜로 알려준 것은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정다운 가정과 그만의 사회와 남은 생이 있기 때문에. 그것마저 모두 다 걸고 앞설 수 없는 것이 소시민이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만은 없는 우리내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이 역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이다. 한강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필치, 지적인 감수성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동호'라는 한 소년을 추적해나가던 서술자는 당시 광주에서 운동에 주도했던, 가담했던, 가담하게 됐던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못한 끝맺음을 아프게 기록했다. '너'라는 인칭을 사용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일곱 개의 뺨'이라는 제목이 붙은 일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집 앞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책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주먹으로 훔치며 전화기에 동전을 넣었다. 114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69쪽, '일곱 개의 뺨')

 

  아무것도 읽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허기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부쳐준 올배쌀을 공기에 담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85쪽, '일곱 개의 뺨')

 

군인이 민간인에게 총을 쏜다는 것. 앞으로 우리 역사 속에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은 분명한 학살이다. 좋아했던 TV 프로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말했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의 십자가가 있다'고.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도 '그들 나름의 십자가'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민주주의는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현재의 우리는 당연하게 그것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이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무참한 폭력과 비참한 죽음이 자행되었는지 기억하고 공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134쪽, '쇠와 피')

 

2013년 1월의 서울 거리는 며칠 전의 꿈속처럼 황량하고 차가웠다.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평론을 쓰는 한 선배는 나에게 왜 소설집을 보내주지 않느냐며 웃으면서 항의했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205쪽, '에필로그-눈 덮인 램프')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207쪽, '에필로그-눈 덮인 램프')

 

 

어울리지 않게, 너무 예뻐서, 더 슬픈, 더 아픈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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