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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 제목에 매료되어 시집을 사서 읽었었다.
그리고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라는 시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라는 구절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 이를 악물어야 한다'라는 구절은 왠지 모르게 퍽 공감이 되었다.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 좋기도 하였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눈동자의 맺음새'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들었다.
더이상 자랑이 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시인의 위로가 참 좋았다.
그리고 박준 시인의 산문집이 나와 읽게 되었다.
제목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때때로 울고 싶고, 울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의 울음은 꼭 뭔가 달라지기를 바라서만은 아니다.
아픔, 상실, 이별, 슬픔, 눈물, 같은 것들이 부정적인 단어라고만 치부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시인이라 그런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아마도 지나쳐갈 것 같은 사소한 일들에도
보다 더 의미 있고 아름다운 말로 섬세한 시선을 둘 수 있는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가끔씩 시를 찾아 읽고 싶은 때가 있다.
시를 읽는 것은, 또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접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고
국어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고 지금의 내 모습에 이르게 되었기에
나에게 시란 여전히 어렵지만 가까이 가 닿고 싶은 장래희망 같은 것.
박준 시인의 시집을 다시 한번 읽어 볼까 한다.
* 밑줄 긋기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침 업무회의 시간에 '전략' '전멸' 같이 알고 보면 끔찍한 뜻의 전쟁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고 점심에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 "언제 밥 먹자"라는 진부한 말을 했으며 저녁부터는 혼자 있느라 누군가에게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9쪽)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선생님의 이 말은 당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삶의 장면 장면마다 불러내는 말이 되었다. 비 오는 오후의 술 생각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 혹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의 냉수처럼 간절한 말. (63쪽)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 (107쪽)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110쪽)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 절을 알아봐줄 테니 출가를 하는 것도 생각해보라고도 덧붙였다. 당시 나는 그길로 신경질을 내며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 때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141쪽)
어느 모임의 저녁 자리에서 연세가 지긋한 한 분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시작은 역시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분의 말은 달랐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한창 힘들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 가지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준이씨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이드세요."
충격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로 채워둔 사람과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어느 한 시절 후회 없이 살아냈던 사람의 말은 이렇게 달랐다. (148쪽)
보충수업과 아이의 어린이집 방학으로 점철되었던 나의 여름방학 마지막날(순수 방학 only 하루),
오전에는 미용실에서 염색을 해서 머리톤을 정리하고, 오후에는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 책에서 문학인들의 평균 연봉이 214만 원이라고 읽었는데, 너무 박하다.
그들로 인해 내가 가지게 되는 마음의 풍요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인데 말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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