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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라틴어 수업'

eunjini 2017. 11. 13. 14:13

 

 

 

오랜만에 책 읽으며 형광펜까지 들고 밑줄 팍팍 그으며 읽었다.

 

# 수업에 대한 것

 

  사실 외국어를 빨리 익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호기심과 애정을 갖는 겁니다. 좋아하면 더 빨리 잘할 수 있습니다. (…) 제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도 라틴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고 라틴어를 통해 사고체계의 틀을 만들어주는 데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머릿속에 책장을 하나씩 만들어주는 것이 수업의 지향점이었지요. (23쪽)

 

  좋은 수업도 한 편의 좋은 영화, 심금을 울리는 한 곡의 노래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수업에서 다루는 지식이 학생들의 삶의 어느 부분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야 하고, 어떤 지식에 대해 학생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확장시킬 여지를 던져줘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 그 자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할 방법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또한 그 지식 외의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도록 해줘야 하죠. 즉 진짜 교육은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라틴어 학습은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72쪽)

 

 

# '공부하는 노동자'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86쪽)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합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 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이 생깁니다.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88쪽)

 

  분명히 '아무리 공부해도 무능한 노동자'라고 수없이 자기 자신을 책망했던 시간이 머쓱해질 때가 올 겁니다. 결국 공부는 성숙을 배워가는 좋은 과정입니다. 힘들게 공부하는 과정 중에 자기 자신과의 소통을 경험할 수 있어요.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면 자신의 한계를 보기도 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지독한 나, 열등한 나와 조우하게 되고요. (90쪽)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매듭을 짓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어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가보는 연습을 해보라고요. 공부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잘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17쪽)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개인적, 사회적인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실존과 마주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각하고 난 뒤부터 신을 경배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갔다가, 막상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함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134~137쪽)

 

  라틴어로 '공부하다'란 동사의 원형은 '스투데레(studere)'이고 여기에서 영어의 '스터디(study)'가 유래했습니다. 본뜻은 '전념하여 노력하다, 갈구하며 몰두하다'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노력하는 것이 '공부하다'라는 뜻입니다. (…)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다른 비결이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기에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241쪽)

 

 

# 삶에 대해서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향기로, 그 기억이 나쁘면 나쁜 향기로 말입니다. (155쪽)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에 대해 분석해주는데 이때 글의 내용이 아니라 바로 시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학생들의 글을 보면 문장의 시제가 대부분 과거시제입니다. 과거시제가 제일 많고, 현재시제가 일부분, 미래시제는 극히 드뭅니다. 아마도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내일은 불명확하고 오늘은 이야기하기 애매한, 그런 생각이 반영되었을 거예요. (163쪽)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멘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잊지 못할 장소일 수도 있고요. 그 책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았기 때문에, 그 그림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눈뜨게 되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책 한 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게 되지 않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될 겁니다. 누군가와의 만남도 스쳐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겁니다. 한순간 스치는 바람이나 어제와 오늘의 다른 꽃망울에도 우리는 인생을 뒤흔드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215쪽)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 제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그가 제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팠던 거예요.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 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때부터 저는 상처를 달리 생각하게 됐습니다. 대부분 스스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다가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57쪽)

 

  나는 매일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남은 생 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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