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행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관심이 없다.
학창시절 단체로 갔던 수학여행이나 MT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 '여행'이란 것의 '처음'을 돌이켜 본다면
내게 '진짜 여행'의 '처음'은 남편과의 신혼여행이었다. (그때 처음 여권을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결혼을 한 뒤에, 아이를 낳기 전에, 우리 부부는 (주로 나의 방학 때)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마치 나중엔 그런 시간이 없을 사람들처럼.
그리고 정말로 아이가 태어난 뒤에 여행은 '먼나라 이웃나라' 얘기나 다름 없이 되었다.
그런 내게 여행 에세이라 하면, 그렇게 떠나버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와 돈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의
마치 자기가 갔던 곳이, 먹은 음식이 최고인 양 뽐내는 글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박솔미, '오후를 찾아요' 이 책은 달랐다. 내 생각이 짧았다.
현재는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가 된 사람과 연애 때부터 여행다닌 각각의 도시에서 느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아주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아주 적은 나이도 아닌, 서른이라는 나이에 진입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에게 전해주고픈 인생의 간략한 팁들을 여행이라는 테마 속에 녹여냈다.
저자와 비슷한 나이의 또 비슷한 애 엄마이기에 공감가는 얘기들이 많았다.
여행지에서 찍은 소소한 사진들도 담겨있는데 담백하기 그지없어 오히려 내 눈을 오래 끌어당겼다.
사람이 어려 보일 수는 있지만, 다시 어려질 수는 없는 법이다. 젊게 입고 젊게 먹고 젊게 마실 수는 있겠지만 젊음 그 자체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예외 없이 모두가 하루씩 늙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주 잘 늙고 싶다. 어떻게 해야 잘 늙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내가 곱게 늙었는지, 흉하게 늙었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나보다 젊은 사람들의 몫이다. 어느 먼 세월이 지나 늙은이가 된 나는, 좋든 싫든 어리고 총명한 친구들과 대화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은 나의 회사 동료일 수도 있고 또 나의 고객일 수도 있다. 혹은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딸의 친구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나의 딸과 대화하며 살아야 한다.
나는 다짐한다. 그들과 나 사이의 이질감을 지우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겠다고. 오히려 어느 정도의 자연스러운 거리를 잘 유지하는 쪽을 택하기로 한다. 그것은 젊은 편에 속하는 지금의 내가 노인들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오히려 욕심내는 것은 이것이다. 곱게 늙은 노인이 되어, 노인으로서 보일 수 있는 장점 몇 가지를 내 안에 잘 보존하고 있기를 소망한다. 아주 오래된 마을이자 아주 아름다운 마을 시라카와고처럼 말이다. 어린 친구들이 필요한 것을 찾아 나에게 여행을 올 수 있도록. 그들이 한숨 푹 자고 배불리 머으러 찾아오는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아직은 젊은 내가, 이렇게 늙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까닭은 아무래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음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늘 허리춤에 달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가졌다. 늙는 것도 운명이고, 또 늙어가는 채로 내 딸의 젊음을 지켜보는 것도 운명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마음속에 와다 할아버지네 같은 따뜻한 집을 한 채 지으며 늙고 싶다. 내 딸이 자주 찾아와 쉬다 갔으면 좋겠다. (141~143쪽)
요즘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때가 있었다. 교직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내가 상대하는 아이들은 17-19세로 항상 정해져 있는데 나는 매년 한 살 씩 더 나이 들어간다.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는,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내 직업의 특수성이다. 학부모총회 때, "선생님이 젊어서 우리 아이와 잘 통할 것 같아 좋아요."라는 학부모의 칭찬(?)을 들을 때, 나는 서글프다. 학생들이 나이 든 교사를 좋아하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때, 나는 마음이 서늘해진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지게 마련인 이 나이 차이를, 내가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 나라고 언제까지나 '젊은 교사'일 수는 없는 법인데 말이다. 저자는 이질감을 지우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고, 오히려 어느 정도의 자연스러운 거리를 잘 유지하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동감한다. 억지로 꾸며내는 '척'은 '나'부터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금방 알아채고 어색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나도 학생들을 '존중'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존중'해주기를. 서로가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그런 따뜻한 분위기를 아름답게, 곱게 나이든 내가 먼저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해봤다.
진짜 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이 갖고 있는 나름의 빛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북유럽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다. 바쁘고, 비싸고, 더럽고, 위험하고, 뿌옇기로 소문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알바 알토처럼 살 수 없다. 내가 잘 사는 방법은 내가 나로서, 또 여기에서 잘 사는 방법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생활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다만 조금 느린 박자로, 정성스럽게, 유쾌한 표정으로 말이다.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잘 사는 것'이지 '북유럽 사람들처럼 사는 것'은 아니니까. (…) 잘 사는 게 별건가. 잘 사는 건 별게 아니다. 잘 사는 일이 별일이 될수록 못 살고 있음의 증거가 된다. (263~264쪽)
내가 지금 있는 여기에서 하루씩, 조금씩 더 빛을 내고 살아가는 게, 엇박으로 억지노력을 하기 보다 정박으로 하나씩 해나가는 게 진짜 잘 사는 일일 것이다. 많이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오후를 찾아요'라는 제목의 책을 어쩌다보니 주말 오후동안 읽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아이를 유모차에서 겨우 낮잠을 재우고 찾아 든 카페에서, 일요일 오후에는 시댁에서 침대에 낮잠을 재우고 거실 한 켠에 앉아서 읽었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하고 짧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내게 생일 선물로 마음 따뜻한 '오후'를 선물해준 L선생님, 고맙습니다. ^^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0) | 2018.05.24 |
|---|---|
| 황정은, '아무도 아닌' (0) | 2018.04.02 |
| 제인 오스틴, '설득' (0) | 2017.12.08 |
| 이정명, '선한 이웃' (0) | 2017.12.04 |
| 한동일, '라틴어 수업' (0) | 2017.11.13 |
